제1대 제헌국회에서부터 제21대 선거에 이르기까지 역대 국회의원 선거별 특징에 대하여 1부 ~ 4부로 나누어 알아보려 합니다. 오늘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까지의 각 국회의원 선거별 특이사항, 임기, 의석수, 선거 배경, 선출, 선거 방식의 변화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7회 국회의원 선거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4년 4월 15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로 투표율은 60.6%였으며, 인물과 정당의 교차 투표를 가능하게 한 1인 2 표제가 최초 도입된 선거이기도 합니다.
- 투표율 60.6%이지만 2000년대 선거 중 상당히 양호한 투표율을 기록함.
이전까지는 지역구 득표율에 따라 전국구 의석을 배정하였지만 17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정당에 투표를 할 수 있게 하여 정당 득표율에 따른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하게 됩니다.
-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처음 도입이지만, 선거 전체를 두고 보면 2002년 제3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역의원선거에서 먼저 실시한 것으로 기록됩니다.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국 정계는 복잡한 정계개편 과정을 겪고 있었는데, 여권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 탈당과 열린우리당 창당으로 진영 분열이 일어났고, 야권은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 자금 수수 같은 대형 악재가 터지며 민심의 지탄을 받아 어느 정당이라고 딱히 선거에서 유리할 게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심리적 초조함이 겹쳐져서인지, 기어코 선거 실시 한 달여를 앞두고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 자민련은 제16대 국회에서 합심해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초로 현직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을 의결하는 사건을 터뜨리게 됩니다.
그래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 소추 가결로 인해 대통령으로서 직무행사가 불능된 상태에서 고건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하에 선거가 치러지게 됩니다.
- 일명 탄핵선거라고도 불립니다.
결과론적이지만 선거전략으로서의 탄핵은 치명적인 실수였던 셈으로, 탄핵이 지나치게 정략적이고 선거 목적이라는 것은 일반 국민들이 보기에도 분명했습니다.
대통령의 선거중립 위반이 탄핵의 주된 사유였고, 이는 헌법재판소에서도 위법사항이 맞다고 인정은 했지만, 아직 입당도 안 한 대통령이 사실상 자당을 지지해 달라는 말 한마디했다고 바로 탄핵으로 가는 것을 국민들은 납득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제 막 임기 2년 차를 시작한 대통령을 끌어내리려고 탄핵까지 하며 여기에 탄핵안 통과 당시 열린 우리당 의원들이 의장석 점거 농성을 하다가 야당의원과 국회 경위들에게 하나둘 끌려나가며 절규하는 모습은 대중의 동정심 + 야당연합에 대한 분노를 이끌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똑같이 탄핵을 주도했지만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의 운명은 너무나 달랐는데, 한나라당은 121석으로 제1야당의 위치를 굳건히 한 반면, 새천년민주당은 민주노동당한테까지 밀리며 아예 존재감조차 희미한 의석 9석의 제3야당, 군소정당으로 몰락하게 됩니다.
-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152석
총선이 끝나고 약 1달 후 헌법재판소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한 심판을 하게 되는데, 노 대통령의 일부 발언이 위법한 것은 인정되지만 탄핵될 정도의 사유는 아니라고 판단하며 탄핵 기각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무소속 당선자가 가장 적었던 선거로 기록되기도 합니다.
선거 직후 무소속 당선인은 2명이었지만, 국민통합 21 정몽준 의원이 당선 뒤 당을 해체하면서 무소속 국회의원은 총 3명이 되었습니다.
- 참고로,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려 25명의 무소속 당선자가 나와 민주화 이후 총선에서 무소속 당선자 최대를 기록하게 됩니다.
주 5일 근무제도가 전면 도입됨에 따라 전국단위 선거를 목요일이 아닌 수요일에 치르도록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이 선거가 목요일에 치러진 마지막 전국단위 선거가 되었습니다.
제18대 국회의원선거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8년 4월 9일 수요일에 치러진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로 투표율은 46.1%로 역사상 최저투표율을 기록하게 됩니다.
- 역대 투표율 순위는 상단 참조
참여정부 시대가 끝나고, 이명박 정부 출범 바로 직후에 치러진 허니문 선거로, 21세기 최초 범보수정당은 합산 200석 이상을 달성했으며, 특히나 서울에서 고전하던 한나라당은 뉴타운 정책을 들고 나와 서울에서 5석을 제외하고 전부 석권하게 됩니다.
반대로 민주당계열의 정당은 역사상 최악의 패배를 기록합니다.
국회의원 지역구를 인구가 늘어난 경기도의 경우 49석에서 51석으로 2곳 늘리고(243→245), 비례대표를 2석 줄여(56→54) 의원 정족수를 현행대로 299명으로 유지하는 선거구 획정안을 확정하게 됩니다.
대선이 끝나고 4달 만에 치러지는 전국 단위 선거이다 보니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모든 당에서 경선을 치르지 않고 공천하게 되면서 공천 파동이 일어나 다수의 무소속 당선자가 나오게 된 큰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 무소속 당선인 25명 (민주화 이후 최대 수치)
사실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 입장에선 운이 좋았던 선거이기도 했는데, 당장 해당 선거 직후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논란이 커지면서 총선 당시 50%대를 기록했던 이명박 정부 국정 수행 지지도는 1달 후인 5월 초 20%대, 심지어 6월 초엔 10%대까지 떨어지게 됩니다.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2012년)
2012년 4월 11일에 시행한 제19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로, 투표율은 54.2%를 기록했으며, 새누리당이 단독 과반을 차지한 선거입니다.
총선 6개월 전, 오세훈 서울특별시장의 사퇴와 더불어 MB정부 심판론으로 인해 당시에는 한나라당이 어려울 것이라고 예측됐으나 차기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가 전면으로 나와, 10년 넘게 쓰던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진보적인 아젠다를 띄우면서 새누리당이 예상을 뒤엎고 단독과반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으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대선 행보에도 청신호가 켜졌으며, 이후 새누리당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게 됩니다.
2012년 7월 1일부로 출범할 광역자치단체인 세종특별자치시에 대한 선거도 치러지는데, 원래는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부터 자체적인 지역구 의원이 배분될 예정이었으나 역시 여야의 밥그릇 나눠갖기의 협상으로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지역구 의원을 신설하기로 결정하게 되었으며, 비례대표는 줄이지 않았으므로 전체 국회의원 의석수는 300석이 되게 됩니다.
다만 이때만 해도 공직자선거법 조항은 그대로 299명으로 명시되어 있었고, 국회의원 300명 정원은 부칙에 명시되어 19대 국회에만 효력이 있는 한시규정이었으나, 20대 총선 직전인 2016년 3월 3일 자로 개정되어 이후 정식으로 300명이 되게 됩니다.
특이할만한 인물은 충남 논산시-계룡시-금산군에 출마한 자유선진당 이인제 후보로, 6번의 총선을 거치면서 매번 소속 정당이 바뀌었지만, 매번 당선되었으며, 물론 19대 총선에도 당선되는 저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20대 총선에서는 낙선하게 됩니다.
국회의원은 연임 횟수의 제한이 없어 역사적으로 가장 국회의원을 많이 했던 인물은 9번을 연임한 김영삼, 김종필, 박준규 의원 이렇게 3명입니다. 이 기록은 사실상 쉽게 깨지기 힘든 기록으로 남게 됩니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2016년)
2016년 4월 13일에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로 투표율은 58.0%를 기록하였으며, 2016년 재보궐선거와 동시에 시행되었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가져온 선거로 당초 야권의 분열로 여당이 180석을 얻을 수 있다고 언론들은 예측 됐으나, 공천파동으로 비춰진 옥새런으로 꿈은 무너지게 됩니다.
새누리당은 이 총선을 계기로 결국 박근혜 탄핵까지 이어졌고 본격적인 보수정당의 암흑기를 가져오게 됩니다.
- 간단히 요약하자면 새누리당 참패, 민주당 역전승, 국민의당 약진 정도로 볼 수 있습니다.
20대 총선 이후 더불어민주당은 대선과 지선에 이어 21대 총선까지 전국단위 선거에서 4연승을 거두게 되는데, 다시 말해 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보수 정당은 이 선거 이후 4연패를 하게 되는 셈입니다.
이는 이후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여당이 되기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선거 직후 300명의 국회의원 당선자 중 30%가 넘는 100여 명에 이르는 역대 최다 수준의 선거사범이 입건되는 사상초유의 일들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입건자 수 증가의 가장 큰 요인은 제3당의 출현과 영남에서의 더민주 선전, 여권의 과반수 붕괴 등으로 매우 접전인 선거구가 많았기 때문이었으며, 이번 선거는 전례 없는 3 당체제이자 지역주의 붕괴 선거이므로, 주요 후보는 2명이 아니라 3명이 된 지역이 많고, 영남에서도 이제 텃밭이 없어지고, 주도권 다툼이 많아지니 당연히 과열된 선거 양상으로 상대편 고소, 고발이 남발하여 선관위에 적발된 피의자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대다수가 후보들 자체의 고소전 때문인 경우였으며, 가장 많은 혐의는 흑색선전이었고, 그다음이 금품수수, 여론조작 등이 뒤를 이었습니다.
총선이 끝나고 약 6개월 후인 2016년 10월 24일 박근혜 정부 최악의 흑역사로 꼽히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거졌는데, 최순실이 총선 당시 새누리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 선정에도 관여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실제로 박근혜 정부가 공천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이와 관련해서 정보경찰이 박근혜 정부 시절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 등의 ‘동향’을 집중 파악해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때문에 박근혜는 추가 기소되어 2018년 2심에서 징역 2년의 판결을 받아 확정됩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2020년)
2020년 4월 15일에 시행한 제21대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이며, 같은 날 2020년 재보궐선거가 같이 개시되었습니다.
2019년 12월 27일 공직선거법이 개정됨에 따라, 이번 선거부터 2002년 4월 16일생까지 18세 이상 대한민국 국민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며 만학도를 제외한 고등학생이 투표를 시행한 최초의 선거입니다.
참고로 이 선거는 국내 3대 선거(대선, 총선, 지선) 가운데 처음으로 21세기에 태어난 국민들 및 18세 이상의 국민들에게 선거권이 주어지는 선거가 됩니다.
주민등록번호 또한 뒷자리가 3, 4번으로 시작하는 사람들도 선거 투표를 하는 것으로, 행정안전부에서는 이 문제점을 주민등록증을 발급하는 2017년부터 겪어왔었습니다.
주민번호 뒷자리가 3, 4로 시작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는 건 기존 전산단위를 개편해야 한다는 문제가 생겼고, 이를 위해 2018년 통과된 2019년도 새해예산안에서 선관위 예산에 전산망 교체 관련 비용이 반영되게 됩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산 여파로 여러 나라들에서 선거가 지연되는 사태에서도 예정대로 선거가 진행되면서 각국이 주목한 선거이기도 했다. 강력한 방역 조치들로 인해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66.2%라는 최종 투표율로 21세기 치러진 선거 중 대선을 제외하고 높은 투표율을 기록하게 됩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내에서 압도적인 의석을 가지게 된 선거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은 보수 정당 역사상 4.19 혁명 직후 치러진 제5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자유당 이후 60년 만에 가장 적은 의석을 얻으며 미래한국당과 합쳐서야 개헌저지선을 간신히 수성하는 참패를 겪게 됩니다.
집권 후반기에 진입한 문재인 정부가 중간평가적인 성격을 지닌 본 선거를 통해 강한 국정동력을 얻게 되었고 야권은 대부분의 대선 주자들이 낙선하는 타격을 입었다. 당시 야권의 유력한 대권 주자 중 한 명으로 꼽혔던 황교안 대표의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나버린 계기가 된 선거이기도 했습니다.
14대 총선 이후 28년 만에 투표율 최고치인 66.2%를 달성하기도 합니다.
가장 투표율이 높았던 광역자치단체는 울산(68.6%)이었으며, 세종(68.5%), 서울(68.1%)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반면, 가장 투표율이 낮았던 광역자치단체는 충남(62.4%)이었으며, 제주(62.9%), 인천(63.2%)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고 투표율 지역과 최저 투표율 지역의 편차가 6.2% p로 비교적 낮아 전국적으로 고른 투표율을 보인 편이었습니다.
민주화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가장 큰 승리를 한 선거로 평가받으며, 박근혜 탄핵 이후 분열을 거듭하던 보수정당이 3년 만에 손을 잡음으로써, 제19대 대통령 선거 이후 지속돼온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의 1강 체제가 처음으로 위기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을 얻음으로써 87년 체제 이후 기록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행정, 입법, 사법 3부를 석권하는 유례없는 권력을 쥐게 됩니다.
미래통합당은 103석을 얻음으로써 87년 체제 이후 기록적인 패배를 거두었고 패스트 트랙 저지선(120석)에 한참 못 미치는 초라한 부활을 하였였으며, 20대 총선의 불안정한 다자구도와 달리 21대 총선은 민주당 우위의 안정된 양강구도로 회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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